덴마크 응용예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숙련된 가구 제작자였던 폴 케홀름은 건축 소재, 특히 나무와 동일한 예술적 존중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스틸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1955년에 시작된 폴 케홀름과 가구 제조회사 Ejvind Kold Christensen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케홀름의 남은 생애까지 지속되었고, 두 가족의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PK 라운지
폴 케홀름은 자신을 가구 건축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가구가 공간 경험과 디자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그의 믿음을 반영했습니다.
폴 케홀름의 사망 2년 후, 케홀름의 이사들은 프리츠 한센에 1951년부터 1980년까지 폴 케홀름이 개발한 디자인인 ‘케홀름 컬렉션’의 제작 및 판매를 위임했습니다.
프리츠 한센은 오늘날까지 폴 케홀름의 가구를 계속해서 생산하고 전 세계의 건축가들과 개인 고객들에게 배포하고 있습니다.
Design Visions
“저만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소재의 특징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폴 케홀름
천재적인 재능을 간직한 인재: 폴 케홀름
경험이 많은 캐비닛 제작자였던 폴 케홀름은 코펜하겐 응용예술학교(The School of Arts and Crafts)에 입학한 이후 목재를 뛰어넘어 다양한 소재 탐구에 몰두했습니다. 당시 덴마크 출신의 가구 디자이너들은 보통 목재를 주요 소재로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폴 케홀름은 스틸 소재가 자신의 취향과 방식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틸과 함께 가죽, 위커, 대리석, 목재 등 각종 소재들을 조합하는 혁신적인 도전에 나섰습니다.
1951년 당시 22살에 불과했던 그는 졸업 프로젝트에서 Element 체어라고도 알려진 PK25 체어를 공개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프리츠한센의 손자이자 회사 공동 디렉터였던 쇠렌 한센을 사로잡았습니다. 쇠렌은 젊은 디자이너의 엄청난 잠재력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를 프리츠한센에 영입했습니다.
폴 케홀름이 입사했을 당시는 커다란 성공을 거둔 인물이자 프리츠한센의 공동 디렉터 쇠렌 한센의 친구였던 아르네 야콥센이 프리츠한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는 입사 1년동안 아직 그의 의자가 생산되지 않은 것에 대한 조바심을 느끼고 쇠렌의 사무실에 찾아가 '계속 야콥센 체어에만 몰두한다면 프리츠한센을 떠나겠다'고 선언했고, 그의 가시 돋친 말에 쇠렌은 '그럼 떠나세요'라고 차분히 대답합니다.
당시 둘 사이에 긴장감이 형성되기도 했지만, 프리츠한센은 계속해서 폴 케홀름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프리츠한센은 디자이너가 사망한 후 그의 가족의 도움으로 그가 최초로 선보인 졸업 프로젝트였던 PK25를 비롯한 폴 케홀름 컬렉션을 인수했습니다. 마침내 컬렉션은 집으로 돌아온것입니다.
폴 케홀름이 디자인한 PK25™ ‘Element’ 체어, 1951년
폴 케홀름의 PK25™ 드로잉
폴 케홀름이 디자인한 PK25™ ‘Element’ 체어, 1951년
폴 케홀름의 PK25™ 드로잉
가구를 디자인하는 건축가
덴마크를 대표하는 디자이너 폴 케홀름은 가구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가구 디자인의 영역을 넓혔습니다. "가구를 디자인하는 건축가"라는 명성에 걸맞게 최상의 재료와 섬세한 디테일을 활용한 클래식 가구를 제작했고, 가구 디자인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폴 케홀름은 그만의 독특한 시선을 느낄 수 있는 비율과 쉐입이 특징인 작품들을 선보입니다. 각각의 가구들은 인테리어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공간을 정의합니다. 또한 깔끔하고 심플하면서도 동시에 우아한 케홀름의 포괄적인 디자인 철학과 일치하는 특별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폴 케홀름은 소재와 형태, 기능을 완벽히 이해한 디자이너였습니다. 주로 두 가지 기본 소재를 사용했는데, 스틸에 위커, 목재, 캔버스, 가죽, 대리석, 유리와 같은 전통적인 소재를 접목시키곤 했습니다. 소재의 특성에 대한 정확히 이해를 바탕으로 온화한 빛이 비추는 한낮의 북유럽에서 평면적인 구조를 지닌 스틸이 작품 전체에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더한다는 사실을 적절히 활용한 것입니다.
아내인 한네 케홀름이 디자인한 폴 케홀름의 집 내부 사진: 켈드 헬머 페테르센(켈드 헬머 페테르센 소유)